첫사랑에 대한 깔끔한 영화
주변 입소문을 타고 이 영화를 보았다. 건축학 개론.
이 영화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첫사랑에 대한 추억과 판타지, 그리고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춘 깔끔한 영화"이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디테일한 묘사와 개연성, 동시에 과감하게 생략된 군더더기, 배우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가 어루러져, 15년 전 첫사랑과의 조우를 깔끔하게(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게) 그려냈다.
덧붙이는 것보다, 생략하고 추려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깊이 실감하고 있는 요즘.
이 영화가 보여준 생략의 묘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아픈 기억을 현실에 끄집어 냈을 때, 지나치게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그러면서도 추억의 아련함은 남겨놓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 가 여실히 반영된 것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전체 틀(구성)이 은유적이면서도 적절하다.
- 낯선 도시에 처음 홀로 떨어진 여자가 첫사랑을 하게 된다.
- 세월이 지나, 다시 고향에 돌아가게 되고, 그 공간을 옛 첫사랑이 지어준다.
이 과정에서 첫사랑의 시작과 끝, 현재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이것은 감독의 계산된 의도라기 보다,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고 믿고 싶다.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을지라도 ^^;;)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어떤 의미에서 그럴수도...
영화의 홍보 카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럴수도 있고, 아닐 확률이 더 클 수도 있다.
영화를 본 뒤에는 '어떤 의미에서 그럴수 있겠구나.'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만큼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나 있을법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스무 살 청년 이제훈, 서른 다섯 살 어른 엄태웅이 되다
영화를 먼저 본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수지가 커서 진짜 한가인이 된다니까." 라고 할 만큼 전혀 다른 분위기, 전혀 다른 외모의 두 배우의 연계성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제훈에서 엄태웅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너무도 현실감 있어서 놀라웠다.
스무 살 청년 이제훈의 세계는 단순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아가 크다.
내가 보는 것, 느끼는 것, 경험하는 것, 바로 옆의 현실. 이 모든 것들이 절대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더 크게 느끼고, 새롭고, 그리고 어쩌면 실제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외부 세계와 마주한 자아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처음 느끼는 호감, 그리고 여러 우연이 겹친 필연의 첫사랑.
서른 다섯 살 엄태웅의 세계는 무정형이다. 그리고 적응력(포용력)이 크다.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을지언정,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아가 좀더 유연하다.
어떤 모습의 누군가가 튀어 나온다고 해도, 어찌보면 뻔뻔하게 받아칠 수 있다.
그리고 의미를 과대 해석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의미를 찾고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나도 예전 같았으면, 섬세하게 받아들이고 깨지기 쉬운 스무 살에서 어찌보면 무던해지고 현실적이된 서른 다섯 살로의 변화를 싫어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것이 더 좋고 싫고 안타깝고 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그런 시절을 거쳐오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변화해 간다.
기억의 습작
마지막으로 기억의 습작.
영화의 배경이 될 무렵의 노래이기도 하고, 지금 들어도 전혀 진부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감성의 곡이다.
영화를 보고 이 음악이 나오면, 굳이 누군가가 생각나서, 첫사랑의 기억에 가슴 한켠이 아련해져서, 이런 이유가 아니라 단지 음악이 주는 느낌이 애잔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90년대 중반이 추억을 소비하는 소재가 되어 버린 것도 신기하다.
2000년대 중반을 소재로 한다면,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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