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74 loser녀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 솔직해지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논란의 중심 '미수다'방송 당일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loser 발언". 그로 인한, 사건의 전개 양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남성의 키' 더 나아가 "외모"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이다. 거기에 "loser"라는 단어가 주는 임팩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논란에 불을 지폈다.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단순히 그 발언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그렇지, 그 날 방송분의 대부분의 소재들(데이트 비용, 결혼의 조건 등)이 상당히 거북한 내용이었음은 분명하다.
우연찮게 당일, 그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유독 "무슨 무슨 녀"가 많은 한국 사회. 그녀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 무개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난 시크하니까!'
- 자기 중심주의: 자기 자신이 돋보이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 외양 중시: "어떤 사람인가" 보다,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가 더 중요하다.
--> 외모, 다이어트, 옷차림, 명품 등등에 신경쓰는 이유
- 흔들리는 자아 정체성: 내가 누구인가는 나를 둘러싼 환경, 즉 보여지는 것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남자"일 수 있다. 즉, 어떤 남자를 만나는가가 곧 나를 결정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그날 방송은 위와 같은 의식들을 여러 소재를 갖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들이 "loser"라는 단어를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히며, 키 180cm 이하의 대다수의 남자들의 분노를 끌어올렸다.

발언의 핵심: 남자의 키를 경쟁력과 연관시키다!
사실, 이 발언의 핵심은 "loser" 혹은 "180cm" 라는 뇌리에 쉽게 박히는 몇몇 자극적인 단어가 아니라, 우리들이 너무도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 더 이상 문제라고 생각하기 않을 만큼 무의식에 박혀 있는 것, 바로 "외모 지상주의"이다.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다. 10개월 미만의 어린 아기들도 비율적으로 균형을 갖춘 미인의 사진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시각적인 자극, 우리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는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이 있다. 다르게 말하면, 본능적으로 더 아름다운 것,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에 호감이 가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외모 지상주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외모가 사회적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경종이다. 방송에서의 발언을 살펴보면, "요즘 같이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에, 180cm가 안 되는 남성은 loser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즉, 여성의 외모를 경쟁력으로 평가했던 잣대가 남성에게도 넘어간 것이다. 당연히 남성들은 불편하다. 그들의 무의식 속에서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당화가 되지만, 자신의 외모가 평가 기준이 된다고 하는 것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오고, 더 나아가 그 기준에 속하지 못한다면 "분노"가 밀려온다. 그리고 그 분노는 발언을 한 개인에게 향했다.

왜 '키'에 민감할까?
결과적으로 그녀의 발언은 "loser"라는 자극적인 단어의 사용과 "남성의 키"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논란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자보다 남자들이 "키"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 그럴까? 여성들에게는 하이힐이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있다. "깔창은 남자의 자존심".
즉, 자신도 모르게 남녀 상관없이 내면화한 '외모 지상주의'에 따라 자신 스스로를 평가하고, 또 평가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남성들에게는 "키"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170cm, 180cm라는 절대적 기준 외에도 상대적 비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키가 180cm가 넘는 사람도 자기 보다 작은 주변 친구들이 깔창을 통해서 위로 "올라"오자, 그대로 볼 수 없어 자신도 깔창을 깐다는 이야기는 우스갯 소리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다. 깔창이 왜 남자의 자존심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요컨대, 보여지는 것이 평가 받는 시대에, 남자의 키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명확한 기준인 것이다. 그게 키에 민감한 이유이다.

대본, 제작진의 불찰 논란
사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도 흥미롭다. 네티즌들의 반응, 공인들의 발언, 관련 패러디물, 그리고 발언한 본인의 대응 방식, 같은 방송에 출연한 또 다른 "개념녀"에 대한 반응들까지.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대본대로 했을 뿐이다.", "사전에 편집했어야 하는 내용이었다."등등의 제작진에게 쏟아진 화살들이다.
사실, 대본에 loser라고 명시가 되어 있었든, 실수로 편집을 하지 못했든, 그날 방송에 대한 이러한 논란의 제작진의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그날의 주제 자체가 전반적으로 '여대생의 솔직한 발언'이라는 컨셉으로 비슷한 논리들을 풀어냈었다. 기획 단계에서 큰 흐름이 그랬다면, 하나의 발언이 가져올 문제에 대해서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특별한 여과 과정 없이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이다.
더 흥미롭게도 제작진의 의도를 다시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일부 한국 대학생들의 잘못 된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외국인 '미녀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비판하려고 했다.>라는 의견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 "잘못된 생각" 혹은 "무개념"일까? 그렇다면 초점은 그 발언을 한 개인에게 갔어야 하는게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외모도 경쟁력?! 솔직해지자
사실 누가 "외모도 경쟁력이다"라는 명제에 반발할 수 있을까? 당위적으로 "외모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논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접근했을 때, 명확한 논리를 보지 못했다. 그만큼 사회에 뿌리 깊은 인식이다.  단지 그 정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문제된 방송에서의 발언이 자극적이고, 일부의 의견이 일반화되는 듯한 인상을 거둘 수는 없으나,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만약 그녀가 "loser"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녀가 180cm가 아니라 170cm를 기준으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무의식적으로 그냥 지나치고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지금처럼 대 놓고 분노하고, 그것을 풀만한 새로운 대상을 찾으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발언에 대해서 남자들은 함께 분노하고, 여자들은 조용히 넘어가고, 뭐 이런 식의 반응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왜 불편했을까?'를 돌아보자. 그 기저에는 자신들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당연시한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의식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한 공인들의 반응도 "난 170cm 정도가 좋아요.", "나도 180이 안되는데 loser다."라는 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당연시 하는 생각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no. 73 머물고 싶지 않은 나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어제 시사매거진 2580을 보다가 이주노동자에 관한 르포를 보게되었다. 최근 강제추방 당한 미누와 함께 밴드활동을 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고,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왔는데, 불법 체류자라는 이름으로 강제추방 당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호주에 가서 얼마 안되었을 때 우연히 보게된 뉴스가 생각났다.

Why me? There are a lot of Koreans
호주에 간지 한 두 달쯤 되었을 때인것 같다. 기숙사에서 저녁을 해 먹으려던 참이었다. 거실에 틀어놓은 TV에서 익숙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한번에 듣기에도 친숙한 영어. 왠일인가 싶어, TV앞에 서니,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성이 호주 백인남성을 앞에두고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뉴스의 내용인 즉슨, 여행비자로 호주에 와서 일을 하다가 호주 관련 당국에 걸린 것이다. 그녀는 왠지모르게 친근한 억양의 영어로 "Why me? There are a lot of Koreans!"를 외치며 억울하다는 모션을 취했다. 그제서야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눈에는 그녀의 행동이 적반하장 격으로 보였다. 잔뜩 흥분한 그녀의 태도에 슈트를 완벽하게 차려 입은 관련 공무원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금 뒤에 들어온 중년의 백인 아주머니는 흥분한 그녀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려 했지만, 억울하다는 반응만이 돌아왔다.
 
다시 2009년의 한국
다시 시사매거진 2580으로 시선이 돌아왔다. 화면에는 대전의 한 중국인 여성이 식당에서 일하다가 공무원의 단속에 걸려 끌려가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때리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뒤이어 공무원의 추격에 도망가다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치 한 네팔 노동자가 소송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네팔...

 네팔에서 온 루찌
 그가 네팔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다시 호주에서 만났던 네팔 친구인 루찌가 떠올랐다. 그녀를 처음봤을 때, 도무지 국적을 가늠할 수 없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눈매는 인도인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인도식 억양을 찾아 볼 수 없었고, 인도인이라고 하기에도 어딘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네팔에서 왔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네팔 출신 사람을 만났다.
루찌는 네팔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환상을 모조리 깨주었다. 네팔이라고 하면 속세와는 멀리 떨어져서 천천히 걷는 삶을 실천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루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기 주장이 강했고, 성격이 급했으며, 특히 백인 남성들의 시각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백인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백인 남자는 금발의 백인 미녀를 좋아한다"부터 시작해서 비판을 늘어놓는 그녀를 보면서 한때,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동양인 그것도 동양인 여성에 대한 시선을 깨닫게 되면서 동류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언뜻언뜻 스치는 그녀의 말 속에서 그녀가 네팔의 서민층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런 그녀와 같은 나라의 사람이 지금 한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눈빛을 스크린 너머로 쏘아대고 있었다.

아이러니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 같다. 제3세계의 노동자들에게는 머물고 싶지 않은 나라, 언제든 내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구 국가에서는 우리 나라의 사람들이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본 기사에 따르면 호주와 한국은 앞으로도 더욱 돈독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호주의 총리인 "케빈 러드"와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는 물론 사석에서도 친분을 유지하는 절친이라고 한다.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지표만 보아서는 잘 실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실제 외국에서 잠시나마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으로서 느끼는 대한민국의 위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경계선에 놓여있다는 점이었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대안제시하기
나는 인문학도 이고, 그 중에서도 심리학을 이중 전공으로 공부해서 인지, 원래 사회를 보는 시각이 그런 것인지, 어떤 것을 보더라도 개인적, 미시적인 측면에서 먼저 살펴보게 된다. 가끔 지하철에서 알 수 없은 외국어로 말을 하든 외국인들을 보면 복잡한 지하철에 대한 원망을 나도 모르게 그쪽에다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이 영어로 크게 통화하거나 대화하는 백인들을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통화내용을 엿듣고 '쳇 뭐야, 별거 아닌 이야기 하는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나조차 타인을 대할 때, 이중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서구 국가에서 받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다른 어딘가에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비슷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뉴질랜드에 갔을 때, 오클랜드 시내 거리를 걸어다니는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클랜드에 조금 떨어진 곳에 한국인들이 주로 하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면 사는 이유가 분명있을 것이다.
조금은 감정적일지 몰라도, 이런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실질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적어도 한국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안 없이 본국으로 강제추방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실적인 대안은 거기에서 시작하는게 아닐까?

이상 아직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브한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렛츠리뷰]시사인100호

시사인 100호!
100호를 맞은 시사인의 테마는  저널리즘이었다.

무엇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신뢰도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사가 인상 깊었다.
이 기사를 읽고 어제 KBS가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 하다는 것을 요지로 한 간담회를 열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KBS 스스로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 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왜 지금 KBS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는가 다시금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렛츠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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