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9 인간의 내면 혹은 본성에 대해서 <미스트> 빨강머리 앤


미스트
감독 : 프랭크 다라본트
원작 : 스티븐 킹
출연 : 토마스 제인, 마샤 가이 하든, 로리 홀든
장르 : 공포, 스릴러, SF, 드라마
현재 상영중인 영화임을 감안하여, 본 글은 스포일러성 글이 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분명 대학에 들어와서 이전보다 더 많은 영화를 접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에 나에게 영감을 준 영화나, 시각의 전환점을 준 영화는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고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키기 보다 그저 오락용으로 소비를 하지 않았었나. 기대하고 있다 보게 된 <미스트>는 그 영화들과 다른 새로운 자극을 내게 주었다.

이 영화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다들 지적하다 시피, 인간의 본성, 그리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한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살펴보는 것이다.

안개,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의 시작

이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데이빗은 아들과 함께 장을 보러 마트에 들린다. 그런데 한 남자가 코피를 흘리면서 무엇엔가 쫒기듯이 마트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그는 이렇게 외친다.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어요."
마트의 유리문 밖으로 희뿌연 안개가 들이 닥치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져오는 안개로 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복선 하나
이웃을 태우고 마트로 향하는 차 안에서 데이빗은 비밀 군사작전이 근처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인간의 본성 하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인간을 알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혹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진화심리학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인간은 변화를 꺼리는 생물이다. 즉,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 예측할 수 없는 것, 모호한 것 등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개로 인해 밖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 남자의 말로 인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하게 된다. 무엇이 있듯이 섣불리 변화에 대응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 둘, 두려움을 넘어서는 혈육에 대한 애정

모두들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 할 때, 두려움에 떨면서도 안개를 헤치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 집에 남겨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데려다 주려는 사람이 없자, 그에 분노하면서도 그 여자는 혼자서 안개 속을 헤치고 마트 밖을 나간다. 뿌연 연기 사이로 그 여자가 사라지고 마트 안의 공기는 한층 더 무거워져 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혈육에 대한 염려로 인해 두려움과 맞서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응하는 기재 하나, 이성에 대한 신뢰

실제로 이 영화를 보면서 원시시대의 인간이 저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저 너머의 다른 생물들은 인간을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즉 밖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 영화는 그 다양한 군상들을 비추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성에 대한 신뢰이다. 타지에서 왔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과의 괴리감을 느껴왔던 흑인 변호사는 안개 속에 촉수가 달린 괴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사실을 알리자, 자신을 바보로 보고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명백한 증거조차 눈으로 확인하기를 거부하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안개 밖으로 나간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영화상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하는 여러 괴물(;;)들을 보건대 그들의 길이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려움에 대응하는 기재 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

영화 전반에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카모디 부인. 평소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그 분은 성겅을 읽고 예언(?)을 하며, 인간들이 신을 모독했기 때문에 그 응징이 내리는 것이라며 공포 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한다. 처음에는 모두들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하지만, 점점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밤이 되자 거대한 모기며 익룡(?)의 습격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그녀가 신의 대리인이라도 된 듯 그녀를 따르기 시작한다.
많은 관객들이 카모디 부인에게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또한 누군가를 제물로 바치려 하는 그 모습에서 그 누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위와 같은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중세의 마녀 사냥, 종교적 기적에 대한 다양한 설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광신도적인 믿음 등등... 종교는 21세기에도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에 다다랐을 때 자신 위의 어떤 절대자적 존재 즉 신에게 의존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전혀 납득할 수 없고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직시하는 것보다 또다른 어떤 것에 빠져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한다면 신적인 절대자가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수월할 수 있다.

논란이 많은 결말에 대해서...(스포일러 일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보지 마세요.)


우리 나라에서 <미스트>의 결말에 대한 관객의 평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결말을 보고 무언가 허무하고 그 비극성 때문에 약간 화가 났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약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모습에 어느 정도 공감은 갔다.
대부분의 관객들의 분노 역시 주인공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의 우연성에 대한 분노와 어이없음, 허무함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영화의 결말로 인해 그 비극적인 카타르시스로 인해 이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고 말할 수 있다.
괴물들의 공포로 부터 떠는 아들과, 지금까지 침착하게 함께 해온 노부부, 그리고 아들을 보살펴 주며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한 여인. 그들을 괴물에게 당하게 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고 마지막에 괴물을 향해 두려움에 떨며 소리치는 주인공의 모습은 정말이지 장엄했다.

만약 그 후 장면이 군인들이 괴물을 진압하고 탱크를 몰고 돌아오는 장면이 아니라, 정말 괴물과 주인공이 대면했더라면 사람들은 허무를 덜 느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비극이란 그런 것이다. 운명적 비극이란, 어떠한 노력을 다해도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극인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부인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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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마란스 2008/01/18 08:36 # 답글

    정말 끝까지 인간을 조롱하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안될 영화였죠.
    초중반은 그냥 인간을 비판하는 정도겠지...했는데 카모디 부인씬부터 엔딩으로 들어가면서 조롱이다, 이건 조롱이야. 인간을 비웃고 있어. 라면서 꽤나 오싹했더라죠. (정확하게는 '인간은 둘 이상이 모여있으면 편갈라서 서로를 죽이기 바쁠테니까.'라는 대사부터.)

    어찌되었든 꽤 좋은 영화였습니다. 평가보다는 말이죠.
  • 마그론느 2008/01/27 21:05 # 답글

    저도 그 부분에서 약간 오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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