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1 대한민국 20대, 할 말 많습니다.

미디어를 지배하는 배후는 누구일까? 아, 아니, 대중문화 시장을 지배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더 친절하게 말하면, 대중문화의 소재 선택의 결정인자는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구.매.력. 구매력을 가진 타겟층의 구미에 맞추어 소재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 대한민국의 20대로서 한 마디 하자면, 대중문화 시장에 20대의 요구나, 관심, 고민들 바탕으로 하는 것들이 무척이나 부족한 듯 하다. 실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소설, 영화, 드라마 시장에 한정되어 있긴하다.

잘 생각해 보시라. 대한민국 20대를 대표할 만한 작가가 있는가? 실은 이런 말을 하면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난 한국의 현대문학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전무하다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로서, 그들의 고민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에 대한 소설이 아직까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거다. 창비에서 우연히 "김애란"작가의 작품을 보고, '오, 이거다.' 싶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이 와중에도 잘 모르겠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냐, 너? 내 블로그의 글들은 대부분 정돈되지 않은 글이다. 뭐 어떠하랴? 종이가 인내심이 많다면 온라인 블로그는 링크의 링크를 거듭하는 무질서 속의 질서와 연결 아니던가? 내 글도 과연 그러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호주에 있는 지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바로 "달콤한 나의 도시". 원작 소설을 알게 된건 아마 2006년 인가 였던 것 같다. 에쿠니 가오리 풍의 일본 소설을 지독히 싫어하듯, 정이현 역시 아예 나의 관심 밖이 었다. 이런 말 죄송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나, 작품성 등등 모든 것을 떠나서 그저 개인적 취향 탓으로 정이현 씨 소설은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쨌튼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는 대한민국 30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 30대. 30대에 대한 이야기가 브라운관을 점령했고, 평균 40대의 불륜 이야기느 시청률의 구세주로 딱이다. 언제부터 였을까? 나 어릴 적만 해도 "한지붕 세가족" 같은 가족 드라마가 있었고, 한창 10대 때에는 "학교"같은 청소년 드라마가 있었고, 잘 모르고 봤지만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서울의 달'같은 드라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Nono~.

다들 아시다 시피 시청자 층이 달라졌다. 많은 10대 20대는 본방을 보기 보다 인터넷을 통해 시청하는 것이 편하다. 친구들 끼리 장난스레 이야기 하지만, 90년대 그 다양하고 많았던 황금 시간대 만화영화들이 요즘은 그 전성기를 보내 버린 이유는, 요즘 초등학생들이 학원, 과외에 바빠 6시에 집에 있지 않기 때문(?)인 것처럼. 광고를 따내기 위한 시청률에 도움이 안되는 시청자층을 고려할 만큼 방송국이 한가하지 않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보면서 그냥 안타까웠다. 30대를 향한 드라마는 그들을 어느 정도 가까이, 있는 그대로 스케치하려 노력하고, 그들에게 메세지를 전해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읽진 않았지만, 소설 역시 그런 메세지를 던지고 있지 않을까? 한편 20대는 어떨까? 사람들은 대한민국 20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88만원 세대라는 말 말고, 그들의 고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의미나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일까?

진정으로 원한다. 무언가 새로운 시선을 던져 줄 수 있는 20대 작가가 나오기를. 말하고 싶은데 표현할 수 없는 그, 가려운 그 무언가를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20대 작가가 나오기를.

박진영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봤다. 노래에서 중요한 건 가창력이 아니라, 가사 전달력이라고. "말하듯이 노래 해라!" 대중 음악의 특성을 제대로 간파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노래의 느낌을 전달하는 건 그 사람의 가창력이 아니라, 어떻게 전달하느냐, 어떻게 음악을 받아들이도록 포장하느냐이다. 그게 호소력이라면 호소력이겠지.

나는 이와 똑같은 말이 글쓰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글쓰기가 아닌 다음에야 소위 "문체"라고 말하는 것이 소설이나 픽션에는 필요하다. 누군가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으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내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느낀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공감하라고 강요할 생각 따윈,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구나, 이렇구나' 이거다. 물론 작가에게는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겠지.

나는 작가도 아니고, 작가 지망생도 아니지만, 내 목소리를 통해서 나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누군가 이해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글쓰기란 그런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문체...

소설을 읽거나 누군가의 블로그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듯한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난 그게 부러운 거다. 그게 글쓰기라고 생각하고. 선호하는 문체가 있다면? 간결체를 좋아한다. 단문에서 단문으로 이어지는 간단 명료함. 오 헨리 단편에 빠졌듯 바로 그거.

그런데 글을 쓸수록 느끼지만, 나는 그저 수다쟁이 인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짧은 문장에 명확하게 내 생각을 담기 힘들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지리하게 이어지는 만연체가 되어 있다. 그 속에서 당신들은 내 목소리를 읽을 수 있을까? 풉. 따지고 보면 블로그의 글이 길면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 같다. 나라도.

하지만, 무슨 상관. 지금은 나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는 거니까.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고, 느낄 수 없다면, 2000년대 후반,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통하기에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단지 그 한정된 틀 안에서. 매체가 달라지거나, 시간적 배경이 다르다면 달라질 수 있는 거다.

역시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내 목소리를 느끼게 한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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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론느 | 2008/06/28 02:48 |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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