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72 파니 핑크 (Fanny Fink, Keiner liebt mich) 1994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일까? 빨강머리 앤

예전부터 보려고 했었던 영화가 있다. 바로 이 영화 <파니 핑크>였다.
공부하려고 일찍 나간 학교에서 우연히 대출 목록을 살펴보았다. 이 영화는 몇 달전 대여 순위 50위에 있었다. 목록이 50위까지만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그 달의 대여 순위 51위만 되었어도 나는 또 이 영화를 보는 것을 미뤘을 것이다. 다행히 50위에 랭크가 되어 오늘 나는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Non, je ne regrette rien - Edith Piaf
이 영화는 에디트 피아프의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로 시작한다. 에디트 피아프의 이름조차 생소한 나 조차 이 노래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노래였다.
주인공 파니는 진정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는,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십대 후반의 여자이다. 스스로 결핍을 느끼고 사랑에 매번 실패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한다. 파니는 어떻게 보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외로움을 느끼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믿어지는가? 그녀는 아직(?) 이십대 후반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 생각은 지금의 기준에서 볼때 마치 30대 노처녀 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인생에서 결핍을 느끼고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둔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노래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듯 하다. 그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각자가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오르페오
이 영화를 함께 이끌어가는 파니의 친구이다. 정말도 기이하면서도 유쾌하고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중간에 존재하여 결국 이상의 세계로 사라져 버리는 캐릭터이다. 아프리카와 독일의 피를 갖고 있는 흑인, 그리고 게이, 그리고 점성술사. 오르페오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배경과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감 속에서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오롯이 떠오르는 당당함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적어도 내가 접한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그러면서도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 같기도 하다. 그는 마치 인디언들이 인생의 한 고비에서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마을의 점성술사 혹은 나이 지긋한 예언자, 동시에 언제든 옆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죽기 직전 그가 한 말이 인상 깊다.

"너의 과거는 너의 뒤에 있는 모습이고,
너의 미래는 너의 앞에 있는 모습이야.
그러니까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마.
오직 '지금'만을 갖고 살아."


지금, 여기, 이 시간
어쩌면 이 영화는 "시간"에 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변하는 것에 대해, 사라지는 것 혹은 죽어가는 것에 대해, 사랑에 대해. 결국 "시간" 과 관계된 영화이다.

현재를 살라는 말. '지금'만을 갖고 살아가라는 말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나의 뒤에 있는 나의 모습은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다. 나의 앞에 있는 나의 모습은 지금 내 모습을 반영한다. 사실 오르페오는 한가지 말을 덧붙인다. 시계는 차지 말라고. 시계는 항상 지금이 어디에 있는지만을 말해준다고. 사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몇시인지가 아니다. 내 뒤에 있는 나와 내 앞에 있는 나 사이에 존재한 나. 그 관계에서 '지금의 나'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는 의미 없는 것이다. 오히려 파니의 어머니처럼 밤에 자다가 '틱틱틱'하면서 시간이 나를 두고 흘러가 버리는 듯한 두려움 만을 심어준다.

파니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파니'에게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은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연인일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시간 속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 사랑에 대한 갈구, 지나간 연인에 대한 회상. 그녀의 뒤와 앞에 있는 것들로부터 현재의 자신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Non, je ne regrette rien
그렇기 때문에 내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노래가 역설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후회하면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노래가 아니다. 나의 뒤에 있는 과거는 결국 나를 여기에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내 앞에 있는 나를 향해 나아간다. 아무것도 후회할 것은 없다. 그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한.


Non, je ne regrette rien- Edith Piaf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Non ! Rien de rien
Non !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

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Non ! Rien de rien
Non ! Je ne regrette rien
C'est payé, balayé, oublié
Je me fous du passé !


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건 대가를 치뤘고, 쓸어 버렸고, 잊혀졌어요.
난 과거에 신경쓰지 않아요!


Avec mes souvenirs
J'ai allumé le feu
Mes c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


나의 추억들로
난 불을 밝혔었죠.
나의 슬픔들, 나의 기쁨들
이젠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치 않아요!


Balayées les amours
Et tous leurs trémolos
Balayés pour toujours
Je repars à zéro


사랑들을 쓸어 버렸고
그 사랑들의 모든 전율도 쓸어 버렸어요.
영원히 쓸어 버렸어요.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예요.


Non ! Rien de rien
Non !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


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Non ! Rien de rien
Non !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


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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