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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80 스무살, 도쿄 - 오쿠다 히데오 빨강머리 앤

추석 때 집에 내려가면서 읽기 위해서, 짐이 많아지면 안되니까 사려고 했었던 책중 2권을 포기하고 1권을 골랐다. 포기한 두 권의 책은 <마틸다>와 <방과후>였고, 결국 산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스무살 도쿄" 였다.

오쿠다 히데오의 자전적소설

나는 자전적 소설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데, 아마도 작가의 삶이 인간적으로 다가와서 애착이 생기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 역시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자전적 성향이 짙은 소설이다. 나고야에서 도쿄로 올라와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주인공 "히사오"의 10 여 년간의 모습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각 장마다 딱 하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루가 히사오의 외적 내적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그의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참고로 각 장의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레몬_1979년 6월 2일
봄은 무르익고_1978년 4월 4일
그날 들은 노래_1980년 12월 9일
나고야 올림픽_1981년 9월 30일
그녀의 하이힐_1985년 1월 15일
배첼러 파티_1989년 11월 10일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에 놓여있는가?

세 번째 장까지 읽었을 때,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심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소설이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단문으로 간결하게 이어지고, 감정이나 내면을 깊이 파고들기 보다는 상황을 충실히 보여주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전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독자를 고스란히 그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뒷받침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소설에 나타난 59년생 작가의 이십대의 모습과 지금 한국의 이십대의 모습이 묘하게 닮아있다. 사회 초년생으로 여기 저기 부딪히고 깨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을 보게 되고, 역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센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 후 3장의 모습이 앞으로 내가 언젠가는 경험할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고, 그 맘때쯤 나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묘한 하루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는 인생의 한 시점을 대표할 만한 일상의 "하루"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 하루를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 사건"과도 얽혀 있을 때가 있다.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국제적으로 묵직한 사건 뿐만 아니라 존 레넌의 죽음과도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인이 될 만한 바로 그런 사건들과 오밀조밀 얽혀 있다.
나에게 있어서 우연찮게도 내 삶과 연결된 역사적 사건이라 함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사적으로 관계가 있는 건 전혀 아니고 나와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공감할 만한 수준의 것들이다.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를 저울질 할 즈음에 노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고, 고3 때 탄핵이 터졌다. 대학 시절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참여 정부 이야기였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서거 하셨다. 각자의 삶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렇게 흘러간다.
자주 하는 말인데, 나는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것이 때때로 경이롭게 느껴진다. 단 하루의 사건들이 묘하게 얽히고 서로 의미를 만들어 내서, 결국 그 하루 만으로도 그 시절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 누구에게나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유난히 기억이 선명한 하루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아, 언젠가 지금 이 시기를 뒤돌아본다면 지금이 가장 먼저 생각나겠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1Q84를 읽고 문득 내 초등학교 시절이 궁금해져서 앨범을 펼쳤는데, 이 책을 읽으니 나의 이십대 초반이 떠올라 사진을 뒤적거렸다. 사진은 그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함정이다. 기억을 심하게 왜곡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평범하지만 기이한 하루가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

어쨌튼 그래서 갑자기 생각난 어느 하루의 사진